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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째는 ‘과연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인가?’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지휘자는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과 그가 음악계 또는 우리 사회에 끼친 공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우선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명훈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74년 미국 시민권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나라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쳐준 게 그 시작이다. 물론 그 시대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이제 겨우 빈국을 벗어나기 시작하던 때라 국제콩쿠르에서의 입상, 그것도 우리에게는 적성국의 심장인 소련(지금의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그를 귀빈으로 환영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고 음악인도 저런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음악인들에게 희망의 등대였던 것이다. 이후 마리아 줄리니의 L.A필의 부지휘자로 있으며 지휘자의 길을 걸을 때 그에 대한 기대는 컸었다. 그리고 그가 바스티유 오페라 개관과 동시에 초대 지휘자에 앉을 때까지도 그는 우리 음악계의 희망이었다. 물론 논자도 그때 경부 고속철을 프랑스로부터 도입하면서 반대급부로 그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글로 쓰면서 고국에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게는 누나들이 있는데 바로 위의 정경화는 이미 바이올리니스트로 세계 음악시장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정명화는 우리에게는 명망 있는 첼리스트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간간히 함께 트리오도 하면서 세계무대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덕분에 세계적인 연주자, 지휘자로 국내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서울시향을 맡으면서, 세계적인 우리 국민의 지휘자가 국내 오케스트라를 맡는 게 많은 음악애호가들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고 고마웠을 것이다. 그런 보답은 그의 지휘 콘서트를 가득 채우는 걸로 충분히 보답했다.

그러나 그는 서울시향을 맡으면서 미래 지향의 목표를 몇 번 바꿨다. 처음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 시키겠다’고 했고, 이후는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도 성장 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다 서울시향에 전용 홀이 없어서 발전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목표를 축소했고 급기야는 전용 홀 문제를 들고 나왔을까? 그는 과연 오케스트라를 어떻게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공언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일까?

논자는 정명훈의 음악적 행보에 시종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그래서 이때의 관점에서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기준을 가지고 지켜봤다. 특히 그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부수적이지만 가장 큰 또 다른 기대치는 청중의 동원 능력이었다. 이런 청중 동원 능력은 그것만으로도 음악계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기대감으로 판단을 해서, 그의 진퇴 문제가 음악계에서 나올 때 그동안은 대체로 반대 입장을 취하는 편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MBC <PD수첩>에서 정명훈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고 인터뷰를 하자고 할 때, 인터뷰보다는 여러 정보의 경로를 도와주면서 ‘명예와 경제의 함수 관계가 어떻게 공존 하는가’라는 문제도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 방송은 자체 내의 문제로 방영되지는 못했고 뒤에 편성해서 방영했으며, 이때 MBC측에서 간단한 문의 정도의 전화는 받았다.

정명훈은 그동안 크고 작은 너무 많은 문제를 남겼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대다수는 경제적인 것들이었다. MBC에서도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춰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고 그런 여러 정보를 지극히 일부지만 제공해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정명훈을 통한 서울시향 성장의 진실과 그의 청중 동원 능력 중 우리가 어떤 것을 택해야 할까 하는 문제이다. 논자 역시 고민을 해봤다. 왜냐하면 우리의 음악적 환경의 현실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성장한다 해도 일정한 정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과연 청중으로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그나마 라도 성장에 기대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특히 프랑스음악에서 오케스트라의 구축적인 구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든가 흐름의 역동성과 그의 요구가 성취되었을 때 나타나는 악기간의 음악적 조화를 상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그 특유의 큰 흐름을 지휘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누구나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제대로 오케스트라에 반영되려면 상대적으로 그의 음악적 욕구를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오케스트라 환경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음악적 수용력도 그렇지만 앙상블 구조가 최소한 70~80% 이상이어야 하는데 30~40%의 환경에서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정명훈은 자신의 연주 시 프랑스 연주자들을 초청해서 활용했다. 이런 현상은 오케스트라 발전과는 무관한 것으로 자신만 좋은 연주를 하면 된다는 생각의 발상일 것이다. 이런 외형적인 것 말고도 음악에는 필연적으로 내적인 문제가 음악미를 좌우하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그가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와 처음 와서 연주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있다. 이 교향곡의 외형구도는 이루어졌지만 내적인 힘이 결여되어 있어서 시간성을 받쳐주지 못하는 점 등은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런 그가 ‘오케스트라를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까’는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애호가들에게의 환호에 비해 순 음악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보다는 이미 오케스트라 문화가 안정권에 있는 유럽에나 썩 어울리는 지휘자다. 때문에 청중 동원능력과 음악 문제를 상대적으로 제기한다면 우리 음악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우리 음악계, 특히 오케스트라의 연주 결과는 음악계 발전의 원동력을 지녔음에도 좀처럼 청중 동원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그래서 정명훈의 예술적인 문제로 토론을 제기할 때마다 논자는 이율배반적으로 그를 옹호하는 궤변을 늘어놓아야 했다. 그런 점은 논자의 궤변이 아니라 해도 인정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그러면 정명훈은 과연 세계적인 지휘자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점에서는 두 가지 관점으로 살펴야 한다. 하나는 유럽 문화권에서 존재하는 정명훈이고, 또 하나는 제3세계에 존재하는 정명훈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정명훈이 존재해야 하는 세계는 제3세계가 아니고, 전술했듯이 유럽이어야 한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지휘하는 지휘자이지 오케스트라 자체를 트레이닝 시켜 발전시키거나 이름이 나게 하는 지휘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문화가 보편화한 문화권에서 존재가 성립돼야 존경을 받는 지휘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일정한 룰을 정해놓고 그를 판단한다면 그런 점에서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그룹에는 드는 지휘자다. 그는 이미 세련된 오케스트라가 아니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이 실천되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서울시향의 연주를 보면 오케스트라에서 주자들이 타성에 젖어 연주를 할 때 그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지휘가 시작되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으로 지휘를 하기 때문에 단원들이 타성에 젖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모른다. 실제로 몇 년 전 교향악축제에서 그의 이런 약점이 다 드러났다. 드뷔시로 기억되는데, 그의 시작은 그가 추구하는 앙상블 구성음악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해서인지 그가 단원들에 소홀히 하는 동안 목관악기가 소리를 앙상블에 불균형 되게 연주 했는데도 모른 채 지휘를 했고, 그런 상황을 평으로 지적했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다음 해에 일어났다. 웬일인지 오케스트라가 현악기 파트도 제대로 연주를 안 해주는데 목관만 제대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오케스트라가 앙상블 구성체로써 제대로 갖추지 못한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즉, 유럽의 오케스트라는 앙상블 구성체로써의 정도가 평균 70~80%는 된다. 그런 환경이라 해도 우리처럼 모든 국가나 작곡가를 다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적으로는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독일 지휘자들은 프랑스 음악을 쉽게 안 다루고, 반대로 프랑스 지휘자들은 독일 음악을 잘 연주하지 않는다. 이는 정명훈이 중요한 연주 때 독일 레퍼토리보다 프랑스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이유도 될 것이다. 그가 독일의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에서 지휘자로 활동을 했지만 그건 예외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유럽적인 환경에서의 정명훈은 쉽게 인정받고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오케스트라가 매번 앙상블 때문에 연습을 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문화에서는 그가 힘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표현체로 쓰기엔 그의 트레이닝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이런 정도의 실력이면 우리처럼 세계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특히 그가 지휘할 때 프랑스에서 관악기를 중심으로 많은 주자들이 참여했을 때도 그는 자신의 음악을 만족하게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에게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이제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처음 맡았을 때와 시간 속에서 스스로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축소한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음악외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그가 마지막 연주를 하는 과정에 가장 아쉬웠던 점은 자신의 부인이 수사대상이 되었을 때나 서울시향을 떠날 때 적어도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누가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변명의 말 보다는, 적어도 제가 ‘부덕한 탓’이라고 하는 우리 전통적인 표현법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만일 그랬다면 그에 대한 기대는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잘못된 현실은 밟혀질 것’이라는 말을 남긴 시향 연주 다음날, 진실은 한국에 두고 미국인의 모습으로 가족과 함께 파리로 떠났다.

또 다른 아쉬움은 청중들이 보편적으로 오케스트라 문화에 젖어들기 이전에 그가 떠난 것이다. ‘우리 음악계가 모처럼 많은 애호가들을 음악회로 불러들일 기회였는데’하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글 · 문일근(뮤지컬 디자이너™,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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