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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동님의 글입니다. -------------------------------------------------- | | | |
백석시인의 시어들 |
까다로운 백석시인의 시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고형진 고려대 교수가 백석의 시어를 풀이한 <백석시 物名考> |
를 펴냈습니다. 백석 전집과 평전은 여럿 있지만 시어 사전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백석(白石 or 白奭, | 1912.7.1~1996)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서 1996년 1월 사망
하였습니다. 시인의 본명은 | 백기행(白夔行) 이며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일하여
1934년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 졸업했습니다.
그 후 해방이 될때까지 조선일보사, 영생 여자 고등 보통학교,
여성사, 왕문사 등에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 하였습니다.
토속적인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하였습니다. <통영. 고향. 북방에서. | 적막강산> 등을
발표하였고 지방적·민속적인 것에 집착하며 특이한 경지를 개척
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 나와 | 나타샤와 흰 당나귀>
와 같은 작품은 순전히 모더니즘의 세례의 덕일것 같습니다.
ㅡ 가즈랑집 ㅡ |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山) 너머 마을서 |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 하며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山)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산(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 <사슴>(1936)
<시어 풀이>
* 가즈랑집 : '가즈랑'은 고개 이름. | '가즈랑집'은 할머니의 택호를 뜻함
* 쇠메 : 쇠로 된 메. 묵직한 쇠토막에 구멍을 뚫고 자루를 박음
* 깽제미: 꽹과리 |
* 막써레기 : 거칠게 썬 엽연초
* 섬돌 : 토방돌
* 구신집 : 무당집
* 구신간시렁 :걸립(乞粒) 귀신을 | 모셔놓은 시렁. 집집마다 대청 도 위 한구석에
조그마한 널빤지로 선반을 매고 위하였음
* 당즈깨 : 당세기. 고리버들이나 | 대오리를 길고 둥글게 결은 작은 고리짝
* 수영 : 수양(收養). 데려다 기른 딸이나 아들
* 신장님 단련 : 귀신에게 받는다는 | 시달림
* 아르대즘퍼리 : '아래쪽에 있는 진창으로 된 펄'이라는 뜻의 평안도식 지명
* 제비꼬리 : 식용 산나물의 이름 |
* 마타리 : 마타리과의 다년초.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임
* 쇠조지 : 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 가지취 : 참치나물. | 산나물의 한 가지
* 고비 : 식용 산나물의 한 종류
* 회순 : 식용 산나물의 한 종류
* 물구지우림 : 물구지(무릇)의 | 알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
* 둥굴레우림 : 둥굴레풀의 어린 잎을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
* 광살구 : 너무 익어 | 저절로 떨어지게 된 살구
* 당세 : 당수. 곡식가루에 술을 쳐서 미음처럼 쑨 음식
* 집오래 : 집의 울 안팎 |
ㅡ 국 수 ㅡ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 <문장>(1941. 4)
<시어 및 시구 풀이>
* 멕이고 : | 활발히 움직이고
* 그 무슨 반가운 것 : 국수
* 애동들은 : 어린아이들은
* 김치가재미 : 북쪽 지역의 김칫독 묻어두는 | 곳(김치 창고).
* 양지귀 : 양지바른 곳 모퉁이
* 능달 : 응달
* 은댕이 : 언저리. 가장자리
* 예대가리밭 | :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 산멍에 : 전설상의 커다란 뱀. '이무기'의 평안도 방언
* 분틀 : 국수 뽑아내는 | 틀
* 들쿠레한 : 달콤한
* 갈바람 : 가을 바람
* 텁텁한 : 흐릿한
* 둔덩 : 둔덕
* 사리워 : | 국수 따위를 동그랗게 말아
* 큰마니 : '할머니'의 평안도 방언
* 집등색이 : 짚등석. 짚이나 칡덩쿨로 짜서 만든 자리 |
* 자채기 : 재채기
* 산넘엣 : 산넘어
* 이것은 그 곰의 ~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설화적 분위기로 그려냄. |
국수를 만들어 먹는 '오랜 전통'을 강조하고자 함.
*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 국수의 맛 = 우리 | 민족성의 맛
* 희수무레하고 : 희끄무레하고
* 슴슴한 : 자극을 크게 느기지 않을 정도로 싱거운
* 댕추가루 : 고춧가루 |
* 탄수 : 식초
* 삿방 : 삿(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을 깐 방
* 아르궅 : 아랫목
* 고담하고 : (글, | 그림, 인품 따위가) 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는
(화려하지 않으나 고급스러운)
ㅡ 여우난곬 ㅡ
|
박을 삶는 집
할아버지와 손자가 오른 지붕 우에 한울빛이 진초록이다
우물의 물이 쓸 것만 같다
마을에서는 | 삼굿을 하는 날
건넌마을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왔다
노란 싸릿닢이 한불 깔린 토방에 햇츩방석을 깔고
나는 | 호박떡을 맛있게도 먹었다
어치라는 산새는 벌배 먹어 고읍다는 골에서 돌배먹고 아픈 배를
아이들은 띨배 먹고 나었다고 | 하였다.
ㅡ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ㅡ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세상을 버리고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산골의 오두막에서 살고 |
싶은 가난한 사내가 있다. 곁에 없는 나타샤를 생각하며 초가에
앉아 홀로 소주를 마시는 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 |
가 싸리문을 열고 고조곤히 들어설 것 같고, 그녀와 함께 타고 떠
날 흰 당나귀도 어디선가 기분 좋은 울음을 울고 있는 것만 | 같다.
사랑하는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생각하는 밤. 그는 더 이상 가난
한 사내가 아닐 것이다. <황병승·시인> |
고형진 교수는 1983년 백석 시에 등장하는 단어 중에
기존 어휘 사전에서 확인할 수 없던 시어들의 뜻풀이를 처음으로 |
시도했습니다. 그 첫 시도를 한 지 30여 년 만에 백석의 시어 전부
를 빠짐없이 풀이해 분류하고, 용례와 빈도를 확인한 사전을 | 완성
했습니다. 고 교수는 백석이 1935∼1948년 발표한 시 98편의 시어
3366개를 모두 의미별로 분류한 다음 시어의 | 정확한 뜻을 풀이하
고 빈도를 조사했습니다. 단어 이해에 필요한 그림과 지도를 곁들
였습니다.
책 속에는 새롭게 | 뜻을 찾은 시어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시 '칠월 백중'의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라는 시구에서 | '물팩치기'는 '무릎까지 오는' 등으로 풀이
돼 왔지만, 고 교수는 이를 무릎의 방언 '물팩'과 옷을 뜻하는
'치기'가 합성된 |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은 바지나 치마 등의 옷'
으로 해석했습니다.
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의 "나는 무서워 오력을 | 펼 수 없다"
라는 구절에서 '오력'은 지금까지 '오금'의 평안북도 방언으로 풀
이 됐지만, 연구 결과 '오륙(五六)', 즉 | '오장과 육부', '온몸'을 이
르는 말로 정확한 뜻을 찾았습니다.
고 교수는 머리말에서 "백석은 작품의 총량은 많지 | 않으나, 그 안
에서 부린 시어의 총량은 엄청난 것"이라며 "가공하지 않은 자연
어의 조합으로 이룩한 이 언어 군집은 모국어의 | 원석이 얼마나 신
비하고 눈부신 것인지를 일깨운다"고 말했습니다.
상술한 바와 같이 백석시인에 대한 시어사전이 있듯이 |
윤동주, 김수영, 정지용시인 등의 개별시인의 시어사전이 이미
나와 있어서 후배 문인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 가운데서도 특히 경희대 김재훈교수가 펴낸 <한국현대시
시어사전>은 20세기 초 최남선부터 1990년대 신진 시인의 시 |
까지 우리현대시에 실제 사용된 시어를 가려 엮은 것으로 시어
의 특수성에 비추어 난해어를 중심으로 뜻을 풀이하고 용례를 |
수록하였습니다. 시인들이 독창적으로 만든 조어와 새로 쓰인
고어, 방언, 은어, 비속어 및 시어로 쓸 만한 낱말들을 중심으로 |
표제어를 선택하였으므로 시를 올바로 읽기 위한 독서사전 및
시를 쓰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작문사전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 |
였으며, 비유어와 상징어는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그 어휘가
적절히 쓰인 시를 전문인용하고 출전을 밝히어 상징사전 및 간 |
략한 시문장사전을 겸할 수 있게 한 시문학계의 역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ㅡ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 ㅡ |
백석에게는 이화여대에 다니던 통영의 란이 있었지만
백석(白石)은 많은 여인들 중 자야(子夜)만을 사랑하였으니,
백석이 남긴 | 빛나는 사랑의 시(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자야(子夜) 김영한과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백석과 자야는 함흥 | 영생여고보 교사들의 회식 장소에 나갔다가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백석과 운명적으로 만납니다.
자야는 백석이 진정으로 사랑하였던 | 단 하나의 여인이었고,
그녀 또한 그 사랑을 평생 올곧게 간직하였습니다.
백석은 그녀가 사온 ‘당시선집’을 뒤적이다가 |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발견하고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그때부터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자야오가’는 | 長安에서 西域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러 나간 낭군
을 기다리는 여인 子夜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곡입니다.
길상사의 전신인 요정 | 대원각 주인이었던 김영한(筆名 金子夜)은
천재 시인 백석(白石)과 3년간 동거하였던 기생 眞香이었습니다.
못다한 사랑을 길상사를 | 지어 시주하고 법명을 吉祥華로 하고
그곳에서 곱게 산화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