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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동님의 글입니다. -------------------------------------------------- | | | | | |
우리 나라의 영토에 대하여
우리의 생존 토대가 되는 기본단위가 국가이고, 민족입니다. |
영토 없는 국가는 존립할 수 없고, 영토 없는 민족은 지리멸렬하
다 모두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와 같은 영토(領土, | territory)
는 국가영역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영
토가 없으면 영해도 없고 영토 및 영해를 떠나서는 | 영공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토를 기준으로 영수(領水)·영해(領海)·
영공(領空)이 정해집니다. 국가는 국제법상 영토의 | 상부 및 내부
에 광범위한 배타적·전할적(專轄的) 권리인 주권, 즉 영토고권을
가집니다. 우리나라는 한반도에 그 토대를 두고 | 반만년의 역사를
지속하여 올 수 있었습니다.
순조때 다산 정약용선생은
요즘의 말로 우리나라 영토에 대하여 |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은 고조선에서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
라 강역의 역사를 각종의 문헌에서 기록을 | 뽑아 고증하고‚
"용안(鏞案)"이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첨부하여 그 내력을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고조선과 발해 외에 | 한사군에 대해서도
총론과 각론으로 구분하여 한사군의 위치와 그 역사를 고증하였
고, 삼한 또한 총론과 각론으로 구별하여 마한, | 진한, 변한의 위
치를 다루고, 이어 옥저, 예맥, 말갈, 발해의 순으로 북방 여러 나
라의 위치와 역사도 함께 검토하였습니다. | 또한 지리 고증에만
그친것이 아니라 고조선 이래의 역대의 강역과 수도, 하천 등의
위치를 새롭게 밝혀 잘못 기록된 지리서에 수정을 | 가했습니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삶의 터전인 강역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
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 <아방강역고>외에도
유득공(柳得恭)은 <발해고(渤海考)>를,
신채호(申采浩)는 |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를,
신경준(申景濬)은 <산경표(山經表)> 를,
김정호(金正浩)는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 1903년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은 |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증보하여, 원본(原本)에 안설
(按說)을 붙이고, 일본고사(日本古史)에 의해 | 임나고(任那考)를,
또 새로 발견된 황초령비문(黃草嶺碑文)과 당시 문제가 되었던
백두산정계비고(白頭山定界碑考)를 더 붙여서 |
친일적 시각으로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를 간행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우리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의 범위를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영토는 | 휴전선 이북의 미수복지구를 포함하
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소련 및 중국과 국경을, 동·서·남방
으로는 해안 및 도서로 | 정해집니다.
이에 우리 나라의 영토는 남북으로는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진의 북위 43°1′부터 최남단인 제주도 남제주군 | 마라도의
북위 33°06′에, 동서로는 최동단인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의 동경
131°52′에서 최서단인 평안북도 용천군 마안도의 | 124°11′에 걸
쳐 있고, 총 면적은 22만1000㎢이며, 부속도서는 제주도를 포함
하여 약 3,300개입니다. |
현재 영토분쟁에서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휴전선의 존재입
니다. 6.25 동족상잔전쟁의 산물인 휴전선은 역사적으로 | 되풀이된
한반도 분할선들의 슬픈 유산으로 고착되어 버린 감이 있습니다.
일찌기 기원전 2세기 고조선을 멸망시킨 중국(漢)이 대동강 | 일대
에 한사군을 설치하여 이 대동강선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대치선으로 등장하였고 7세기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면서 양국의 |
영토 분할선으로 합의한 것이 또 대동강선이었습니다.
멸망한 고구려의 계승을 자처하고 고구려 강역의 회복을 열망하여 |
대조영이 옛고구려의 고토에서 건국한 발해는 동북 만주의 송화강
흑룡강 일대를 확보한 후에 한반도 방향으로 남진하다 통일 신라와 |
또한 대동강선에서 대치하였으나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공존의
관계였으므로 이 시대를 일컬어 우리역사의 이른바 2국시대 또는 |
남북국시대라 합니다. 10세기의 발해의 멸망은 한민족 영토사에서
만주지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의 상실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
10세기 거란이 침공하자 자비령이북을 떼어주고 전쟁을 피하자는
자비령분할선이 원의 영토가 된 동녕부의 남방 경계가 | 되었습니다.
16세기 후반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명나라에 조선 영토를 대동강
선으로 분할할 것을 제안했다가 거절되자 조선4개도 | 할양을 요구
하였는데 이렇게 할양되면 그 지역은 대략 한강 이남 지역이 됩니
다. 결국 전통시대의 외세에 의한 한반도 분할선은 | 39도선과 38도
선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에 이르러 제국주의 열강은 한반도 분할을 둘러싸고 각축전 |
을 벌였습니다. 청일전쟁 발발 직전에 영국은 한반도 분할 점령
을 제의했고, 또한 일본은 러시아와 한반도 39도선 분할을 두고 |
협상이 결렬되자 러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해방후 미국과 소련은 38도선을 경계로 진주했고, 이 38도선이
6.25전쟁후 | 휴전선이 되었기로 근대에도 한반도 분할선은
39도선과 38도선 사이에서 오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전통시대와 근현대를 | 통틀어 주변 국가들의 한반도 분할
시도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기인합
니다. 북방의 대륙세력과 남방의 | 해양세력이 한반도에서 충돌할
때면, 한반도는 그들의 전쟁터가 되거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조
건으로 분할협상의 대상이 되곤 | 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분단
을 극복하는 방안은 한반도 안에서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
습니다.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
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토에 대한 중요한 조약이나 개념들을 | 살펴보면
초기 고조선의 강역은 도읍지 근방의 패수가 어디냐에 따라서
청천강설, 대동강설(평양), 압록강설, 요하설, 난하설, | 송화강
설이 있는데 이 강들로 북방경계선을 삼을때 고조선의 강역의
광협 크기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 전통사상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영토는
간도에서 대마도까지와 강화도에서 울릉-독도까지 라하였으며
청과의 백두산 정계비는 대체로 | 압록-토문강선이라 하였으며
이로써 간도는 물론 송화강 이남 전역이 조선영토에 귀속 되었
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 박탈하면서 대륙침략
을 위해 만주이권과 바꾸어 간도 영유권을 청에 넘겨주었습니다.
러시아의 녹둔도 영유는 녹둔하의 러시아쪽 | 連陸에 따라서
당사국인 조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청과 러시아의 국경조약
으로 러시아에 편입되었습니다.
또 |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특성상 섬과
바다를 둘러싼 영토분쟁의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과 한국 | 사이에는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분쟁과
동해-일본해의 이름 분쟁이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
한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 러일전쟁에 있습니다. 일본이 이 전
쟁에서 승리하므로써 일본의 한반도 강점은 기정 사실화되었고
전쟁중 일본은 군사적 거점을 | 확보하기 위하여 독도를 자국 영
토로 편입시켰습니다. 또 전쟁중 동해에서 벌어진 러시아와의
해전을 "일본해 해전"으로 부각시켜 | 부르더니 국제기구를 통해
"일본해" 명칭을 공식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독도 분쟁의 역사적 연원은
조선시대의 | 울릉도분쟁에 이릅니다. 17세기후반 일본은 대마도
주를 중심으로 울릉도를 자국영토로 편입하려 시도했다가 도리
어 조선영토로 | 인정한바 있고 당시 양국이 합의한 사안에 독도
의 조선영유권이 포함되어 있고 이는 현재 독도영유권논쟁에서
주요 근거로 작용하고 |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주목할 사항은
영토수호는 국가적 차원에서만 아니라 민간인 차원에서도 이루
어진 사실입니다. 일본의 울릉도 | 침탈기도에 정부가 空島정책
등으로 등한시 할때 민간인 안정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담판을
짓고 영유권을 재확인 받았으며, | 6.25전쟁중 일본이 독도에 무
단 침입했을때도 울릉도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독도수비대를 결
성하여 독도를 지켰습니다. |
이에 반하여 일부 우국단체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간혹 주장하지만 이는 감정상의 객기일 뿐
입니다. 역사적으로 | 대마도는 우리영토였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 역사를 통하여 왜구의 빈번한 침입으로 조정에서 골머리
를 앓다가 고려말과 조선 세종때에 | 이종무가 왜구 준동의 근
거지였던 대마도정벌을 했지만 영토로 포함시키진 않고 대마
도인들의 노략질을 중단시키는 것으로 | 마무리지었습니다.
대마도가 우리 영토였다면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렸어야하
지만 그런적은 없었습니다. 대마도는 주로 일본과 조선 | 사이
에서 가교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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