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술가곡의 발전을 위한 소고
- 작곡가에게 바란다. -
정덕기(작곡가, 백석대학교 교수)
1. 들어가는 글
우리예술가곡이 발전하여 독일가곡이나 이태리가곡 프랑스가곡들처럼 세계적인 예술가곡으로 태어나기위해서는 각 분야마다의 역할이 다를 것이다. 예를 들면 성악가들은 외국가곡보다 우리예술가곡을 더 열심히 불러주고, 청중들은 우리예술가곡을 사랑하여주고, 기획자들은 우리예술가곡의 무대를 더 많이 열어주고, 방송매체나 언론에서는 우리예술가곡을 보다 더 많이 전달해 주고 화제의 기사를 발굴하여 실어준다면 훨씬 빨리 발전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그 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질 높은 우리 예술가곡을 작곡해야한다는 것이다. 성악가들에게 우리예술가곡을 부르게 하기위해서도, 청중들이 사랑하게 하기위해서도, 기획자들이 더 많은 무대를 열게 하기위해서도, 방송매체나 언론에서 더 많이 전달하게 하기위해서도 화제의 기사를 싣게 하기위해서도, 작곡가들이 먼저 우리예술가곡의 질을 높여야 할 것이다.
어떤 평론가가 독일가곡이나 프랑스가곡은 아주 수준 높고 훌륭한 클래식음악이라 말하면서 우리예술가곡은 대중음악과 클래식음악의 중간정도의 수준으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또 유학을 간 성악도들이 졸업연주를 준비할 때 지도교수로부터, 그래도 한국 사람인데 한국가곡 몇 곡을 프로그램에 넣을 것을 제안받기 일쑤라고 한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가곡을 프로그램에 넣을라치면, 꼭 반주자들이 곡과 화성진행이 왜 이렇게 되었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오는 통에, 우리가곡을 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들어 온지도 약 100년이 되었다. 1880년경 창가라는 이름으로 서양음악이 태동된 이 후, 1920년 홍난파선생의 ‘봉숭아’를 최초의 우리가곡으로, 우리의 예술가곡은 거듭 발전하여왔다. 그러나 몇몇 우리가곡 애호가들은 그 ‘봉숭아’나 초기의 가곡들을 가리키며 아직 이것들을 뛰어넘는 작품이 없다고들 하니 후배 작곡가의 한사람으로서 민망할 따름이다.
이제 작곡가들에게 사명이 떨어졌다. 위와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도, 성악가들에게 우리예술가곡을 더 많이 부르게 하고, 청중들에게 더 사랑받게 하고, 기획자들에게 더 많이 우리예술가곡의 무대를 열게 하고, 방송매체나 언론에서 더 비중 있게 우리예술가곡을 다루게 하기위해서도, 더욱 수준 높고, 완벽하고, 재미와 감동 있는 우리예술가곡을 작곡하여 청중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곡의 수준을 낮추고 쉽게 써야, 대중에게 우리가곡이 먹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쉽게’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수준을 낮춘다’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곡을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의 중간으로 생각하는 판국에 어떻게 더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말인가. 최고의 질과 재미와 감동으로 청중에게 다가갈 때 우리예술가곡은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통하는 음악이 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음악이 세계를 점령할 때가 그리 멀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양음악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적 재료들이 이미 고갈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음악은 아직 사용하지 않은 재료들이 그득 넘치지 않는가.
그럼 우리예술가곡의 발전을 위해 우리 작곡가들에게 바라는 몇 가지 사항을 같이 살펴보고자한다.
2. 시 소재의 다양성
우리예술가곡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시의 소재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예술가곡의 시는 대부분 3.4조, 7.5조의 정형시이거나 내재율을 갖춘 시로, ‘사랑’ ‘그리움’ ‘이별’ ‘고향’ ‘동경’ ‘추억’ ‘자연’ 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예술가곡을 정리해 보면 대부분이 위와 같은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1940년대 김순남의 예술가곡에는 이미 ‘탱자’나 ‘철공소’와 같은 색다른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색다른 소재로 인기를 누렸던 최초의 예술가곡이 변훈의 ‘명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외에도 변훈의 ‘쥐’ 김대현의 ‘새우’ 등이 있었고 최근에 와서 이수인의 ‘감자’ 한성훈의 ‘국수나 한 그릇 하러가세’ 정애련의 ‘거시기 유전’ 최현석의 ‘떨이’ 등, 그리고 내가 작곡한 ‘와인과 매너’ 이외에 20여곡에 달하는 음식시리즈의 곡들과 ‘분실광고’ ‘구두 닦는 소년’ ‘엘리베이터 안에서’를 포함한 특이한 소재의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절대다수의 우리예술가곡은 서정적인 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그 서정적인 시도 좋다. 그러나 산문적이고 해학적이며, 전쟁이나 병사, 환상, 영혼, 악마, 분노, 등 기발하고 위트가 넘치는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여 작곡하다면, 우리예술가곡이 진부함에서 벗어나 청중들의 귀를 사로잡는 더욱 새롭고 풍성한 음악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3. 시와의 일치성
누가 나에게 예술가곡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우선 가사와 일치하는 음악이라고 대답한다. 가사와 일치하지 않는, 그저 멜로디만 아름다운 음악은 예술가곡이 아니라 음표의 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모국어를 사랑하여 모국어를 가지고 곡을 쓴다면, 그것이 모국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우리가곡이 대부분이다. 우리예술가곡은 출발점부터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서양의 영어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 러시아어와 우리말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언어처럼 꼭 맞지 않는 경험을 나도 많이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며, 더욱 고민하고 가장 시와 일치할 수 있도록 연구하여 우리의 언어가 예술가곡을 통하여 더욱 멋진 언어로 탄생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예술가곡은 시의 억양과 음악과의 일치, 시의 장단과 음악과의 일치, 시의 내용과 음악과의 일치 등과 같은 세 가지 면에서 시와 음악이 일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시의 억양과 음악과의 일치
보통 작곡가들은 멜로디와 가사의 억양이 서로 상반되어 충돌할 때 멜로디를 선택한다. 심지어 조금의 리듬을 바꾸면 주제의 손상 없이도 얼마든지 가사의 억양이나 장단을 살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예 가사의 억양은 배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억양과 장단을 헛갈리게 할 의도로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 가곡에는 가사와 동떨어진 그런 가곡들이 너무 많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는’ 곡이 참으로 많다는 뜻이다.
초기의 음악은 대부분 외국의 가락에 우리 가사를 억지로 집어넣어 부른 곡들이 많아 가사가 지닌 억양과 장단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우리의 음악풍토는 너무 열악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나서 억양을 제대로 살려내야 할 것이 아닌가. 김소월님의 ‘진달래꽃’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작곡되어야 하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작곡되어진다면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을 방해하는 곡이 될 것이다.
2) 시의 장단과 음악과의 일치
또한 언어는 음의 길고 짧음, 즉 장단도 매우 중요하다. 유행가 중에 ‘안개 낀 고(高)---속도로’가 있었다. 그 때 그 ‘고’자를 그 가수가 얼마나 길게 불러재끼는지 ‘고’자를 부르고는 쉬었다가 ‘속도로’라고 발음하였다. 물론 그 때 ‘고’자는 짧아야 한다. ‘높을 고’자는 짧게 발음되기 때문이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말- 과 말, 밤- 과 밤, 눈- 과 눈,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舞)--학여고’를 ‘무(無)학여고’로 발음하면 그저 ‘학문이 없는 여고’가 된다. 지명중에는 ‘영(永)--천’이 있고 ‘영(榮)주’가 있다. 사람의 성 중에도 ‘정(鄭)--몽주’가 있는가 하면 ‘정(丁)약용’도 있다. 정말 잘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3) 시의 내용과 음악과의 일치
예술가곡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시의 내용과 곡과의 일치이다. 어떤 곡은 시의 내용이 슬픔으로 일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흥겨운 가락으로 씌어져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또 어떤 곡은 시의 내용이 쫒고 쫒기는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곡은 초지일관 너무 느린, 서정적인 멜로디로 작곡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가곡은 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한 사람의 작품처럼 거의가 틀에 박힌 멜로디만을 중시하는 서정가곡이다. 작곡가들은 시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시인이 시를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깊은 감성을 우선 공감할 수 있어야 가사와 일치하는 곡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작곡되어진 가곡이 시의 내용과 너무 동떨어져 어떤 분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 때 그 분의 대답이 ‘지금은 그렇게 생각되어지지만 차원을 높여 달관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며 오히려 내용이 맞지 않는 가곡을 차원 높은 가곡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4. 정확한 화성
외국의 연주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장 큰 이유가 화성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 있다 하더라도 문법이 엉망이라 무슨 뜻인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글을 좋은 글이라 하겠는가. 화성은 문법과 비슷하다. 그래서 작곡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가장 기초인 화성법부터 배우는 것이다.
1) 병행 1도, 5도, 8도의 의미
우리가 낭만시대 이전까지의 화성을 이야기할 때 기능화성이라는 말을 쓴다. 기능화성이란 으뜸화음은 으뜸화음의 기능을 하고 딸림화음은 딸림화음의 기능을 하고 버금딸림화음은 버금딸림화음의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같은 화음일 경우와 프레이즈가 끝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각자의 기능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화음의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손가락으로 예로 든다면, 손가락은 뼈는 뼈대로, 핏줄은 핏줄대로, 신경은 신경대로, 살은 살대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살아서 움직이고 자기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연결되지 않고 끊어져 있다면 그 손가락은 살아서 움직이는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화음과 화음은 서로 연결되어야 살아서 움직이며 서로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 한마디로 대답한다. 클래식은 화음의 연결로 이루어진 음악이고 대중음악은 화음의 나열로 이루어진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것만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를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작곡하는 과정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형태가 아니겠는가. 대중음악은 C코드 G코드는 있어도 그저 그것을 나열할 뿐이고 코드를 연결하는데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클래식음악은 물론 코드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연결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화음의 연결이 몇 가지 이유로 이해되지 못하여 방치되고,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곡을 쓸 때 항상 화성법풀이에서처럼 4성부로 작곡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4성으로 되어 지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단성부로, 또는 2성, 3성으로 작곡하기도 한다. 4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단을 쓰거나 36성부 합창곡이라 하더라도 대위법 음악이 아니고는 4성부 이상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왜 그렇게 성부가 많은가. 36성부가 있다고는 해도 4성부만 독립적인 성부이지 나머지 성부는 다 중복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음연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병행과, 병행이 아닌 중복을 혼동하는 것이다. 중복이란 독립성이 없다는 뜻이다.
단성부란 독립적인 성부가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악기를 동원하고 중복하여도 독립적인 선율이 하나뿐이면 단성부인 것이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단성부로 시작한다. 전체 현악기의 합주와 클라리넷으로 위 선율을 함께 연주하지만 이 베토벤의 선율은 단성부이다. 병행1도, 8도가 아니라 그냥 중복인 것이다. 병행1도, 5도, 8도는 다른 성부로 독립성을 갖고 있는 성부에서 병행1도, 5도, 8도로 쓰면 독립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이미 같은 성부로 독립성이 없는 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2성으로 작곡되어 있는 부분이라면 2성만 독립적이면 된다. 4성에서는 4성부만 독립적이면 된다. 나머지는 1도와 8도로 중복되어도 상관이 없다.
이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대가들도 다 이론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병행1도, 5도, 8도를 쓰는 것으로 오해하여, 독립적인 성부임에도 불구하고 병행1도<SPAN style="FONT-FAMILY: 바탕; LETT </P> </P> |